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은 한국 문학사에 서사시를 처음 도입한 서사시인 또는 민족적 정체성을 계승한 민요시인으로 기억된다. 주지하듯이 <국경(國境)의 밤>은 김동환에게 서사시인의 위상을 부여했고, <봄이 오면>, <언제 오시나>,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등은 김동환을 민요시인으로 각인시켰다. ≪국경의 밤≫의 서(序)에서 안서(岸曙) 김억(金億)은 “이 表現 形式을 長篇 -事詩에 取하게 되엿슴은 아직 우리 詩壇에 처음 잇는 일이매 여러 가지 意味로 보아 우리 詩壇에는 貴여운 收穫이라 할 것”이라며 일찌감치 한국 현대시에 서사시의 출현을 알렸다. <국경의 밤>은 내용과 의미에 앞서 그 ‘표현 형식’만으로 당대 시단에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이후 한국 현대 시사는 이를 서사시의 최초 사례로 기록했다. <국경의 밤>의 형식에 대한 여러 논의에도 불구하고, 서구 시론에 기반을 둔 자유시와 민요 형식을 계승한 민요시가 현대시의 주류를 형성했던 1920년대에 <국경의 밤>의 출현은 ‘귀여운 수확’을 넘어 문학사적 사건이 틀림없다.
한편, 김동환은 이광수, 주요한과 함께 간행한 ≪시가집(詩歌集)≫을 통해 민요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민요시라 함은 형식을 말함이 아니라 내재적인 리듬과 정서를 의미하는 것인데, 옛것이나 새것이나 간에 민요적이란 것은 소박한 것, 더 보편적인 것, 즉 대중의 것임이 특징이요, 생활에 밀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적인 전형을 나타냄은 두말할 것이 없다”는 주요한(朱耀翰)의 말처럼, 김동환은 민요시를 통해 소박하고 보편적이며 대중의 생활에 밀착된 리듬과 정서, 즉 우리 민족의 ‘민족적 전형’을 유려(流麗)하게 표현했다. 1920년대, 민족적 삶의 원형과 감성을 전통적 형식에 담아낸 김동환은 김억, 김소월, 주요한 등과 대등한 위상을 지닌 민족 시인이었다.
이처럼 서사시와 민요시는 김동환의 시와 문학적 위상을 일괄할 수 있는 유용한 개념이자 도구다. 그러나 이 개념들을 김동환의 시를 이해하는 절대적 척도로 여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실 서사시와 민요시는 시의 형식이므로, 이 개념들이 강화된다는 것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작품의 형식에 대한 이해로 치환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요컨대 김동환과 서사시, 민요시의 피상적 결합은 오히려 김동환의 시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국경의 밤>의 형식을 강조한 나머지, 작품에 내재된 비극적 낭만성, 근대적 개인의식,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 등을 간과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총체적 인식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며, 민요시의 민족적 성격을 부각함으로써 김동환의 시를 민족주의 또는 애국주의라는 고정된 틀에 가두는 것은 그의 시에 담긴 세밀하고 다채로운 감성을 사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동환의 시에 대한 이해는 서사시, 민요시라는 형식과 그 속에 담긴 의식과 감성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
200자평
<국경의 밤>으로 한국 현대시에 서사시의 길을 열었다. <봄이 오면>, <산 너머 남촌에는> 등으로 민요시를 보편화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다. 그 형식 속에 담긴 의식과 감성이다. 비극적 낭만성, 근대적 개인의식,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김동환을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지은이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 1901∼1958?)은 1901년 9월 27일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성군(鏡城郡) 오촌면(梧村面) 수송동(壽松洞) 89번지에서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명(兒名)은 ‘삼룡(三龍)’이었으나 보통학교(초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동환(東煥)’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김동환은 1926년 10월 14일 경성부 종로구 돈의동 74번지로 호적을 옮기면서 ‘삼룡’을 ‘동환’으로 개명하고, 11월 8일 개명 신고와 함께 호적에 등재했다. 김동환의 아호(雅號)는 ‘파인(巴人)’과 ‘취공(鷲公)’이다. 파인은 1924년 10월 13일, ≪동아일보≫에 시 <북청 물장사>를 발표할 때부터, 취공은 1924년 10월 13일부터 10월 20일까지 ≪동아일보≫에 평론 <문학 혁명의 기운>을 발표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필명(筆名)으로는 ‘김동환(金東煥)’, ‘강북인(江北人)’, ‘김파인(金巴人)’, ‘파인생(巴人生)’, ‘창랑객(滄浪客)’, ‘초병정(草兵丁)’, ‘목병정(木兵丁)’, ‘석병정(石兵丁)’ 등이 있다.
김동환은 1909년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보통학교에 입학해 1913년 3월에 졸업했다. 이후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고 경성(鏡城) 군청에 근무하다 1916년 경성(京城)으로 이주해 중동중학교에 입학했으며 1921년 3월 졸업했다. 1921년 일본 도쿄(東京)에 위치한 도요대학(東洋大學) 문화학과(文化學科)에 입학해 유학하던 중,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으로 인한 조선인 학살과 수용소 수감을 피해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1924년부터 ≪북선일일신문(北鮮日日新聞)≫ 조선문판 기자, ≪동아일보≫, ≪시대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1929년 6월 삼천리사(三千里社)를 설립하고 종합월간지 ≪삼천리(三千里)≫를 창간해 1941년 12월까지 발행했으며, 자매지로 ≪만국부인(萬國婦人)≫(1932년 10월),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1938년 1월)을 발행했다. 1942년 3월 대동아사(大東亞社)를 설립하고 그해 5월 ≪대동아(大東亞)≫를 창간했다. ≪대동아≫는 ≪삼천리≫를 개제(改題)한 잡지였으나 친일 색채가 농후했으며 1942년 7월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이후, 1944년 7월까지 김동환의 잡지 발행 및 출판은 지속되었다. 해방 이후, 김동환은 문단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로 지목되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았으며, 1949년 8월 반민족행위자처벌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6·25전쟁 중, 1950년 7월 23일 납북되었으며 1956년 납북인사들로 구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위임되었다가 1958년 노동자수용소로 추방되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동환은 ≪금성≫(1924년 5월호)에 <적성(赤星)을 손까락질하며>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시뿐만 아니라 평론, 수필, 희곡, 소설 등 문학의 전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시집으로 ≪국경의 밤≫(한성도서주식회사, 1925), ≪승천하는 청춘≫(신문학사, 1925), ≪시가집(詩歌集)≫(삼천리사, 1929), ≪해당화≫(대동아사, 1942)를 상재(上梓)했다. 이 중 ≪시가집≫은 이광수, 주요한, 김동환의 작품이 함께 수록된 3인 공동시집으로 1920년대 민요시의 경향은 물론 김동환의 문학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 평론집으로 ≪평화와 자유≫(삼천리사, 1932), 수필집으로 ≪꽃피는 한반도≫(숭문사, 1952), 기행문을 엮은 ≪나의 반도산하(半島山河)≫(삼천리사, 1930), ≪반도산하(半島山河)≫(삼천리사, 1941)와 여러 편의 희곡과 소설을 남겼다.
엮은이
방인석은 197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1998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입학했다. <조태일 시 연구>로 문학 석사 학위를, <김수영 시의 탈식민성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글쓰기, 논문 작성법 등을 강의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글쓰기와 문학 관련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차례
國境의 밤
꿈을 따라갓더니
물결
北靑 물장사
先驅者
漂泊
눈이 내리느니
超人의 宣言
哭廢墟
國境의 밤
三人 詩歌集
詩歌
봄비
九十春光
첫날밤
貞操
罷業
哀悼
손톱으로 색인 노래
눈 녹기 前後
五月의 香氣
小曲·民謠
님을 보내고
우슨 罪
시작
장승
우리 옵바
俗謠
봄이 오면
언제 오시나
자장가
뱃사공의 안해
江이 풀리면
거지의 꿈
팔려 가는 섬 색시
海棠花
海棠花
불항아리
希臘 女人
아모도 몰르라고
래일 날
孤獨
香불
약수 물터
城隍堂 황철나무에
함박꽃
누나 무덤
落葉
노래 부르는 뜻
長安寺의 老僧
山 너머 南村에는
정든 山川
뻑국새 우는 마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北靑 물장사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마테 찬물을 솨−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드듸면서 멀니 사라지는
北靑 물장사.
물에 저즌 꿈이
北靑 물장사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최도 업시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츰마다 기대려지는
北靑 물장사.
●國境의 밤
第一部
一
‘아하, 無事히 건넛슬가,
이 한밤에 男便은
豆滿江을 탈 업시 건넛슬가?
저리 國境 江岸을 警備하는
外套 쓴 거문 巡査가
왓다− 갓다−
오르명 내리명 奔走히 하는대
發覺도 안 되고 無事히 건넛슬가?’
소곰실이 密輸出 馬車를 띄워 노코
밤새 가며 속 태이는 젊은 안낙네
물네 젓든 손도 脈이 풀너저
파− 하고 붓는 魚油 등장만 바라본다,
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깁허 가는대.
●우슨 罪
즈럼길 뭇길래 대답햇지요,
물 한 목음 달나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바덧지요.
平壤城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우슨 罪밧게.
●우리 옵바
우리 옵바는 서울로 공부 갓네
첫해에는 편지 한 장
둘재 해엔 때 무든 옷 한 벌
셋재 해엔 부세 한 장 왓네.
우리 옵바는 서울 가서
한 해는 공부,
한 해는 징역,
그리고는 무덤에 갓다오.